일반적으로,
어떤 랭크를 매길 때나 클래스를 나눌 때 A급 B급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된다.
이 등급이 B C D E F 로 향해 갈수록,
'격이 떨어지거나 수준 낮은' 이라는 단어들과 동의어가 된다.
쌍권총이라는 말만 들어도 온몸이 소름이 돋게 만들고,
B라는 알파벳은 위너가 아닌 2인자들의 것이며,
지금은 MBTI에 의해 그 자리를 넘겨주긴 했으나 한때는
아무 잘못도 없는 B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을
무슨 바퀴벌레 보듯 두려워하게 만들었던 이 불합리한 현상들은(이건 아닌가),
순전히 이 세상 학업 제도의 악역향이다!
명백한 오바임을 인정한다.
어쨌든,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B가 뭐 어때서 그러는가 말이다!!
각설하고,
학업 제도에 대한 병폐야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적어도 영화에서의 B급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라도 바꿔보고쟈 한다.
먼저 영화에서 B급의 정의는 이렇다.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 하에서 비용이 적게 소요되며,
A급 영화나 장편영화보다 그 이름이나 등장하는 배우의 명성이 낮은 영화.
독립제작사들이 만든 영화도 예산이 적게 들게 되므로 B급 영화로 간주되고 있다.
1950년대 시작된 소규모 제작비의 영화는 공상과학영화로부터 시작해서
60년대의 모터사이클 영화들, 그리고 70년대의 흑인개척영화와
마약에 관한 영화들이 이에 포함된다.
-네이버 용어사전에서
보이는가.
사전 그 어디에도 '돈 적게 든 영화는
영화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는 없다.
하지만 B급 영화의 의미를 약간 '수준 낮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적어도 내 지인들 중에는 상당히 많다) 마치 성적을 매기듯,
어떤 영화의 가치에 대해 B급이라는 꼬리표만을 보고
'이건 가치 없는 것'정도로 폄하하고 마는 것이다.
이제 B급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려주겠다.
"훌륭한 감독은 기본 규칙에 대해 알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감독은 그 기본을 열심히 찾는다.
그러나 규칙을 따른다고 해서 영화가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만 되면 일이 너무 쉬워진다."
-Ethan Coen,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에서
코엔 형제의 말처럼 기본 규칙에 충실한 영화들은 많이 있다.
또 그것을 보며 재미를 어느 정도 느낄 수도 있다.
허나 모든 영화가 그런 식이라면 이 얼마나
단조롭고 따분할 것인가.
해서 뒤틀기가 시도되는데,
이것은 당연히 철저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시도 되는 것들이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이건 형편없는 기본기를 가진 사람의 작품이군'
하고 지껄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의도된 뒤틀기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분방한 발상으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내놓은 것이기에 피카소의 작품들은 혁명으로 기록되는 거다.
B급 영화의 의미 역시
어느 정도는(전부는 아니다 이유는 후에) 그런 것이다.
영화를 비롯한 무언가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데만 사용되는 우리의 편협한 관점을,
초 무식한 방식으로 날려버리는 무모함을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사고의 필요를 역설하는 것.
엉성할 수도 있지만 의도된 연출을 통해
'영화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사고방식을 무너뜨려주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다.
또한 극도로 과장된 연출을 통해서 (스플래터무비-피와 살점이 마구마구 난무하는 영화-처럼)
메시지의 강렬함을 높여주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디스트릭트 9 같은
영화를 보면, 피와 살점이 난무하지만 그런 끔찍한 장면들을
인간의 사악함과 추악함을 보여주기 위한 소스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고를 하게 해 주고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는 이 심각한 영화들을,
단지 표현방법이 가볍거나 저렴하게 보인다고 해서
무시할 이유가 무엇인가.
B급은 '수준 낮은'과 동의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기발하면서도 분방한 영화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장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이 보장되어야만 가능한 작품이다.
이런 천재적 또라이들이 나오는 환경은,
소위 A급들을 양성하기 위한 학업제도가 아니다.
다양한 사고와 자유로운 마인드가 넘치는 환경이어야 하지 않겠나.
PS. B급영화의 전부가 그런 식으로 어떤 심각한 주제의식을 갖는 건 아니다.
전부는 아니다라고 언급했지 않은가.
어떤 영화들은 철저하게 영화의 관습을 비웃는
무뇌적인 연출로 일관하기도 한다.
이런 영화들을 즐기려면
'머릿속 뇌의 존재는 파괴당하고 흘러내리기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다시 머릿속에 집어넣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며,
뇌는 젤리와 아이스크림처럼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제 맛이며,
헤모글로빈의 양은 많으면 많을수록 아름다워지며,
뼈와 살은 분리가 되어야 정육점 업계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정도를
레드썬~~해야만 한다.
쉽게 말해 머리를 써봐야 얻을 것이 없는 영화다.
그러나 이렇게 막 나가는 연출도 B급 무비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저런 거에 매력을 느낀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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